조선체육회의 전국체육대회 개최

조선체육회의 전국체육대회 개최

1920년 설립된 조선체육회의 첫 사업은 전 조선야구대회의 개최였다.

이 대회가 전국체육대회 제1회 대회이며 조선체육회는 이어 전조선축구대회, 전조선정구대회 등

3개 종목의 대회를 개최 하였다.

그 후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각 종목별 대회에서 탈피해

마침내 야구, 축구, 테니스, 육상, 농구 등 5개 경기의 종합대회로서의 형태를 갖추었다.

따라서 제15회 전국체육대회는 우리 민족 초유의 종합경기대회로서 사실상 오늘날의 전국체육대회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전국체육대회는 회를 거듭하며 새로운 종목이 추가 되어 12개 종목으로 운영되다가

1937년 제18회 대회까지 개최된 후 폐지 되었다.

이로써 전국체육대회 역사상 제19회(1938)대회부터 제25회 대회(1944)까지 총7회 대회가 중단되었다.

광복 후 조선체육회 재건 이전의 임시기구인 조선체육동지회 주도로 한국 스포츠의 재건을 위해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종합경기대회의 부활이었다.

1945년 10월 27일 자유해방 경축 종합경기대회(제26회 전국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어

육상, 축구, 농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축구, 자전거, 탁구, 마술 등 10개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이 대회는 오늘날 해마다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의 전신이며 지금의 반쪽짜리 체육대회가 아닌

한반도전체의 체육대회로서 해방의 기쁨을 고조 시켰으며 한민족의 자긍심과 일체단결을 이끌어 내었다.

자유해방경축기념 종합경기대회는 비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최되었으나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스포츠의 첫 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서막을 알렸다.

조선체육회 재건이 이루어지고 이듬해인 1946년 10월 16일~10월 20일까지 본회가 주최를 하고

군정청 문교부 후원으로 제1회 조선올림픽대회(제27회 조선올림픽대회)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약 5,000여명의 선수단, 이승만 박사, 러취(Archer L.Lerch) 군정장관 등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당시 신문을 통해 이승만 박사의 개회사 전문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사람이 단결하야 일령 지하에 훈련잇게 남 못하지 않게 살수 있다는 것을 천하에 뚜렷이 알리는 길은 오직 이 마당에서 싹이 트고 움이 돗는다. 가슴에 뚜렷이 태극마크 부치고 내성명 석자로서 세계강국에 어깨를 가티 하야 우리의 의기를 선양할 선수 제군의 노력에 감사하고 건투를 빈다(동아일보, 1946. 10. 17).

이승만의 개회사에는 스포츠를 통한 민족의 단결과 국위선양을 강조하며 국가재건과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와 염원을 담고 있다.

이 대회에서는 연식야구, 송구(핸드볼), 권투, 역도, 체조, 레슬링 등 6개 종목이 추가되어

모두 16개 종목으로 진행되었고 종합경기대회로서의 전국체육대회의 면모를 점차 갖추어 가고 있었다.

제2회 조선올림픽대회(제28회 전국체육대회)는 1947년 6월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조선올림픽위원회(KOC) 가입이 승인되어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올림픽대회를 1년 앞둔 시점에서

개최되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

1947년 10월 13일~19일까지 개회된 이 대회는 미식축구, 체조경기, 씨름, 궁도, 조정 등

5개 종목이 신설되어 21개 종목에 걸쳐 선수들의 열띤 경쟁으로 인한 경기력 향상을 통해

우수한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었다.

특히 육상경기, 자전거 등의 종목에서 신예 선수들이 다음과 같이 등장하였다.

지난 十三일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한 개회식으로막을연 제 二會 「올림픽」대회는 서울운동장을 비롯한 시내각 경기장에서 七일간불을 뿜는듯 격렬하게 전개되어 「마리손」에 경복중학 재학중의 신인최윤칠(崔侖七)二一군이 선배들을 물리치고 해방후 신기록으로서 당당히 우승하고 자전거 경기에 서울의 권익현(權益鉉)선수가 一만미와 五천미경기에 각각 신기록을 세우고 육상경기의 「함마 |」에 인강환(인강환)선수가 금년도 세계최고기록을짓는 등 찬연히 빛나는 허다한 성과를 거두고 十九일 그막을 닫었다(경향신문, 1947. 10. 21)

이렇듯 이 대회에서는 마라톤에서 최윤칠이라는 신예선수의 등장을 알렸고,

투해머 인강환이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한 사실을전하고 있다.

실제로 육상에서 당시 귀복중에 재학 중이던 신인 최윤칠은 마라톤 2시간 36분 37초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투해머 우승자 인강환은 53m 44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또한 자전차 권익현은 5,000m, 10,000m 에서 각각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선수들의 활약상은 이듬해 개최되는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의 메달획득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으며 제2회 전조선올림픽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체육대회가

한국의 엘리트 선수의 보고(寶庫)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하계전국체육대회에 이어 해방 후 첫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는 1946년 1월 19일~1946년 1월 20일

양일간 ‘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 동계대회’(제26회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라는 명칭으로

한강 특설링크, 창경원 춘당지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빙속(스피드스케이팅)경기와 빙구(아이스하키)의 2종목이 실시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운영되었다.

조선체육회주최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동계대회)는 十九, 二十양일에걸처 豪華한 幕을 열기로 되엇는데 스피-드는 漢江特設링
크에서 正午 학케와 피규어는 昌慶苑 링크에서 午前十時 各 擧行된다 그런데스피-드 部에는 一般男子二十五名 一般女子十五名
中學男子八十名 中學女子百名이 出戰하고 아이스학케部 일반부에延友俱 同友俱 京城醫專B 全世專全開城 延專 京城醫專 中學
部에는 徽文中學龍城松都中學 出戰한다(동아일보, 1946. 1. 17)

위의 기사를 통해 본대회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는 한강특설링크에서

아이스하키경기는 창경원 링크로 나누어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스피드스케이팅은 남녀 각각 일반부, 중등부로 나누어 일반부는 남자 15명, 여자 25명 등 40명,

중학부에서는 남자 80명, 여자 100명 등 180명 등 총220명의 선수들이 출전하고

아이스하키경기는 일반부 연우구, 동우구, 경성의전OB, 전개성 등 4개 팀, 중등부는 휘문중학과

용성송도중학 등 2개 팀이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동계대회는 하계대회에 비해 개최된 경기종목의 수나 출전 선수의 규모면에서 비교했을 때도

동계스포츠종목의 기반이 상당히 미약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듬해인 1947년 제1회 조선동계올림픽대회(제27회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에서는

약 3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점차 대회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특히 북한 지역의 선수들도 대거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에 문동성과 함께 이효창이 두각을 나타내며 육상이나 자전차 등의

하계대회 종목 이외에 동계스포츠 종목에서도 우수한 선수들이 등장한 사실을 통해

1948년 스위스생모리츠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메달획득의 기대와

동계스포츠의 발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1948년 제2회 조선동계올림픽대회(제28회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마지막으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로 이 대회는 남녀 대학부를 신설하여 일반부, 대학부, 중등부로 나누어

경기가 진행되었고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신설했다. 피겨에서는 여자부에서 홍용명(이화여대)이

남자부는 전수봉이 각각 우승을 차지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피겨스케이팅 종목의 실시로

점차 동계스포츠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빙상경기대회와 더불어 조선올림픽대회 동계스키대회도 1947년~1948년까지 총2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제1회 조선올림픽대회 동계스키대회(1947.2.14~2.17)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7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개최되었고 (MBC경남, 2019. 7)

제2회 조선올림픽대회 동계스키대회(1948.2.1~2.3) 역시 제1회 대회와 마찬가지로 지리산 노고단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기온 관계로 열리지 못하고 광장리 아차산 슬로프로 옮겨 개최되었다.

1946년 1월 첫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가 스피드스케이팅, 아이스하키 등 2개 종목으로 시작하여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추가되고 스키대회까지 마련되어 해방공간 시기 해를 거듭하며

한국동계스포츠의 기반이 형성되는 과정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체육회는 전국체육대회를 주최하면서 참가 규정을 마련하고 점차 종합경기대회로서

참가 경기종목을 확대 실시하여 전국체육대회가 양적·질적으로 성장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전국체육대회의 각종 경기대회를 국민들에게 선사하여 스포츠를 통한 민족의식의 회복과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참고문헌 : 파워볼게임사이트https://wastecapn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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